[지리산둘레길의 그곳] 운리 단속사, 정당매(政堂梅)

우리나라 산에는 불교 사찰이 참 많은데,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사찰을 보기 쉽지 않다. 서암정사, 벽송사가 있고 화엄사를 가까이 지나간다. 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찰을 가로질러 가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는데 단속사가 있던 자리다. 둘레길에서 마주할 곳들을 미리 공부하고 떠났으면 좋으련만 무작정 걷다 이름난 곳들을 마주하고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지리산둘레길 성심원-운리 구간을 걷다 운리마을 조금 못 미쳐 지금은 터만 남은 단속사를 지난다. 이곳에는 산청의 유명한 3대 매화중 하나로 꼽히는 ‘정당매(政堂梅)’가 있다. 절터 한쪽에 돌에 새긴 알림판이 있다.


정당매(政堂梅)
이곳 정당매는 통정공 회백(通亭公 淮伯) 선생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분께서 沙月里 五龍골에서 출생하시어 유년 시절 지리산 자락 신라 고찰 단속사(斷俗寺)에서 修學하실 때 手植한 梅花나무다.
그 후 통정 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매라 불리면서 630여 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던 중 1982년 11월 10일부로 경남도 보호수 12-41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원정공 하즙(河楫) 선생께서 수식한 원정매, 통정공께서 수식한 정당매 , 남명 조식(曺植) 선생께서 수식한 남명매와 같이 산청의 삼매(山淸三梅)로 불리운다.
2003년 (음) 10월 9일 세움


정당매는 고려 말 고위 관직인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강회백(姜淮伯)이 어린 시절 단속사에 머물며 공부하던 때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매화나무가 유명한 것은 강회백이 나이가 들어 벼슬길에서 돌아와 어린 시절 심은 매화나무를 보고 느낀 감회를 담아 지은 시 때문이다.

偶然還訪故山來 우연히 옛 고향을 다시 찾아 돌아오니
滿院淸香一樹梅 한 그루 매화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物性也能至舊主 무심한 나무지만 옛 주인을 알아보고
慇懃更向雪中開 은근히 나를 향해 눈 속에서 반기네

매화를 보는 반가운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매화를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겼을 강회백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산청에는 ‘산청 3매’라 불리는 유명한 매화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원정매(元正梅), 정당매(政堂梅), 남명매(南冥梅)가 있다.

원정매는 고려 말 문신 원정공 하즙이 심은 매화나무로, 나이가 700여 년으로 국내 최고령으로 알려져 있다. 남명매는 남명 조식이 시천면 산천재에 심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당매는 1982년 경상남도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워낙 오래된 나무라 상태가 좋지 않아 2013년에 가지 일부를 접목했으나, 이듬해 완전히 말라 죽고 말았다. 650 살에 수명을 다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그 옆에 후계목을 심어 기르고 있다.

정당매를 비롯해 산청 3매가 중요한 이유는 오래된 나무라는 것 말고도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매화나무는 대부분 흰 꽃을 피우는데, 일제강점기 때 개량한 종이다. 개량 이전 토종 매화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200여 그루 남아 있다고 한다(2007년 문화재청 조사). 올봄 화제가 된 구례 화엄사 홍매를 비롯하여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상들은 나무도 집 안에 심을 것과 밖에 심을 것을 가렸다. 매화나무는 추운 날에도 꽃을 피워서 선비가 마땅히 따라야 할 기개가 있는 나무라 하여 집 안에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꽃향기는 바늘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한 어둠 속에 떠 있는 향기라 하였다(암향부동(暗香浮動)). 이보다 더 근사한 향기가 있을까.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매화꽃 피는 소식이 들리면 기꺼이 찾아 꽃과 향기를 즐길 이유가 충분하다. 매실을 따기 위해 키우는 과수원 매화나무꽃도 예쁘지만, 나이만큼 사연을 품고 있는 오랜 토종 매화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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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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