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새참사랑방’ 순례자 쉼터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순례자 쉼터인 궁항마을 새참사랑방이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지난가을 듣고 다른 쉼터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지리산에서 만나는 쉼터는 궁항마을 쉼터처럼 지리산둘레길 운영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숲길이나 산림청에서 나서서 만든 곳도 있지만, 마을이나 개인이 만들고 운영하는 곳도 있다. 크기와 운영 형태도 똑같지는 않다. 개인이 운영하는 쉼터는 쉼터라고 할 수도 있고 가게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있는 곳도 있고 사람 없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흐르는 계곡물에 음료수, 맥주를 담가 놓고 돈통 하나 옆에 둔 게 전부인 무인점포도 있다. 대봉감을 기르는 과수원 한편에 냉동고를 놓고 얼린 감을 파는 점포가 있는가 하면, 근사한 정자를 순례객이 쉬어가라고 내어놓은 쉼터도 있다.

큰 마을을 지나지 않는 구간에서는 걷는 도중에 끼니를 해결하거나 물을 살 수 있는 가게 하나 없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쉼터는 정말이지 천사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미국 장거리 트레일에서는 걷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이나 물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을 트레일 엔젤(trail angel)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놓아둔 음료와 먹을거리를 만나는 것을 마법과 같다고 하여 트레일 매직(trail magic)이라고 부른다. 지리산둘레길에도 트레일 엔젤이나 트레일 매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에 비해서는 마을 접근성이 훨씬 좋은 우리나라 지형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일부 구간에서는 미리 음식과 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까지는 아니어도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지리산 둘레길 순례자 쉼터의 필요성은 늘 아쉬움으로 얘기가 되곤 한다.

지난 2015년(벌써 9년 전) 하동 구간에서는 지리산둘레길 운영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숲길과 서부지방산림청, 마을 주민이 힘을 모아 네 곳의 ‘새참사랑방’을 열었다. 둘레길을 이용하는 순례자와 마을 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순례자에게는 간단한 음료와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주민에게는 커뮤니티 시설로 역할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원부춘마을, 서당마을, 상존티마을, 궁항마을이 새참사랑방이 운영된 마을이다.

2019년 내가 지리산둘레길을 걸을 때는 서당마을과 궁항마을 새참사랑방 두 곳에 들렀고, 다른 두 마을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때는 내가 못 찾은 것인지, 없어진 것인지 알아보지 않았는데, 이제 찾아보니 두 마을은 운영한 지 얼마 안 되고 없어졌다. 궁항마을 새참사랑방은 2019년 경상남도 문화우물사업에 선정되어 내가 방문했을 때는 깨끗한 모습으로 단장을 마친 직후였다. 그러니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와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이유로 운영을 그만두게 되었다니 안타까움이 크다. 다행히 서당마을 새참사랑방은 최근에 둘레길을 걸은 사람들의 SNS에 사랑방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서당마을 새참사랑방에 들렀을 때 사진을 보니, 그때 달콤하고 편안하게 쉬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탁자와 의자, 집기.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기다리고 있던 하동 막걸리. 벽에는 마을 주민들의 사진이 한명 한명 액자에 걸려 있어서 참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도시의 아무리 비싼 술집, 식당에 가도 여기서 느끼는 인상과 감정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땀에 젖은 몸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쉼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기도 하고, 고개를 넘고 긴 숲길을 걸은 후 느끼는 뻐근한 팔다리에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지리산둘레길이 유명한 산을 오르는 것과 다른 것은 마을과 마을을 지나며 옹기종기 집 짓고 모여 사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을 지나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새참사랑방처럼 마을의 시간과 사람들의 웃음, 살아가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면, 또 그곳에서 서로 함께 이야기하고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지리산둘레길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과 순례자 모두에게 쉼과 여유를 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오래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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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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