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중산리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탐방로인 중산리 코스. 아마 나뿐 아니라 천왕봉을 오르는 이들이 가장 많이 거치는 길일 것이다. 내가 처음 지리산을 오르고 천왕봉을 향했을 때도 중산리에서 출발했다.

요즘 계절 지리산 풍경을 떠올리다 문득 중산리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중산리 탐방안내소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걷고, 산에서 내려올 때도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 게 흔한 모습이다.

천왕봉

가장 많이 걸은 코스지만 사실 나는 이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터목과 천왕봉에 이르는 가장 잘 알려지고 가까운 길이라서 이 길을 걷지만 걷는 내내 급한 경사와 고르지 못한 험한 바윗길은 괴롭기만 하다. 더구나 계곡 길이라 장엄한 지리산 풍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곳도 없다.

중산리 코스와 비견되는 백무동 코스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중산리 코스만큼 험하고 재미없지는 않다. 내 기억에선 그렇다.

중산리 하산길

내게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길은 정상에 빠르게 오르는 것이 목적인 길이다. 등산의 목적은 무엇일까?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인 등산도 있고 경치를 즐기거나 체력 단련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목적인 등산을 나도 오랫동안 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산에 오르며 경쟁심과 정상에 빠르게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도 많았다.

요즘에는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좋고, 더 빨리 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산에 왜 오르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나뭇가지 사이 반짝이는 햇살에 시선을 주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 눈을 감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높은 곳에 오르는 것보다 좋다.

요즘엔 구례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자주 오른다. 오르는 길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오르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산줄기와 섬진강,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와 헐떡이는 숨과 땀의 보상이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천왕봉이라는 최고봉에 반드시 올라야 한다는 목적도 없다. 성삼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생긴 후엔 화엄사에서부터 오르는 이들이 확연히 줄었다. 그래서 이 길은 고즈넉하게 산을 느끼면서 걷기에 더없이 좋다.

중산리 길은 이렇게 걸을 수 없는 것일까? 천왕봉에 오르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면 산을 오르는 길이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계곡의 물소리, 길을 막아서는 커다란 바위들, 산줄기를 가리는 빼곡한 나무와 풀 모두 다르게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리산과 이어진 마을 중 해방전후 비극을 겪지 않은 곳이 거의 없는 것처럼 중산리도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역사가 있다. 산에 오르는 행위에만 열중한 결과 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삶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정상에 오르는 데 집중하는 등산에서 벗어나 산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볼 수 있는 등산을 하면 중산리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중산리를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지리산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오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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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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