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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

    차일피일 미루던 일을 하나 마쳤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 등록했다. 지지난주 전화로 등록기관에 상담 예약을 잡았고, 그저께 기관을 방문해서 상담과 작성을 마쳤다. 내 생명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내 의지와는 다른 결정이 내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결심하게 된 더 큰 이유는 연명의료 결정의 어려움을 가족에게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다. 아버지 임종 시기 연명의료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던 이후 오래도록 나와 가족들은 마음에 죄책감을 가져야 했다.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미리 생각하고 준비했다면 좀 더 인간적인 임종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생각은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만 죽음을 어떻게…

  • 신경림 선생의 부고를 듣고

    신경림 선생의 부고를 듣고

    조금 전 신경림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책장에 선생의 시집이 몇 권 꽂혀있는데, 마지막으로 꺼내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몹시 화를 내야 할 자리에서도 푸근한 인상만을 짓고 계셨던 선생의 시는 표정과도 닮아 마음 잡지 못해 불안에 떨던 청춘에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건네주곤 했다. 편안했다. 선생의 시는. 쉽게 읽히는 문장과 호흡. 고향 논둑을 걷는 것 같은 평화를 느꼈다.시집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 되었지만, 하늘의 부름을 받아 가신 소식을 접하고 선생의 시를 다시 읽어 본다.지금쯤 낙타를 타고 가시려나.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별과 달과 해와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손 저어 대답하면서,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그 사람을 생각하면 늘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나?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그때마다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나? 내게 어떤 사람은 생각하면 늘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다음은 다를지라도 늘 같은 이미지로 시작한다. 그 사람의 얼굴일 수도 있고 그 사람과의 어떤 기억일 수도 있다.그러나 어떤 사람은 생각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왜 그런가? 나는 하나인데 왜 사람들은 내게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고 다시 떠올려지는가? 기억 속 사람들을 한명 한명 떠올려 보았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내가 오래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 같은 표정, 같은 모습으로 생각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고 내게 그리 좋지 않은…

  • 화엄사 구층암 죽노야생차

    화엄사 구층암 죽노야생차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구례 화엄사에서 산 위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지붕 낮은 건물 몇 채가 이어진 구층암에 이르게 된다. 구층암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건축에서 창의력이 돋보이는 건물로 유명하다. 집 짓는 재료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과나무를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쓴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모과나무는 곧고 길게 자라지 않는다. 옆으로도 휘고 겉도 울퉁불퉁하다. 화엄사를 둘러보면 알게 되지만 이곳엔 모과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암자 건물을 지으며 수백 년 묵은 모과나무를 잘라 겉도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쓰는 것은 참으로 멋스럽지 않은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놀랍다. 모과나무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천불전 옆에는 또 다른 모과나무가 지금도 풍성하게 잎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덕분에 오랜…

  • 비 갠 아침

    비 갠 아침

    차를 타고 가다 세웠다. 하늘과 풍경이 차로 가기엔 너무 아까웠다. 차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좁은 길로 들어서 오르막길이다. 숲길로 접어들자 나무그늘이 시원하다. 땅과 풀, 나뭇잎에 아직 물방울이 반짝이며 달려 있다. 공기는 부드럽고 향기는 싱그럽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 사이로 언뜻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어찌 이 길을 찻길에 양보하랴. 새들은 비 때문에 떠들지 못한 것까지 모두 얘기하려는 듯 귀 아프게 짖어댄다(박새, 네 목소리가 제일 커. 검은등뻐꾸기, 넌 좀 뜬금없다). 숲길을 가로지르면 그 끝에 오늘 갈 책방이 있다. 책을 들춰보고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나 책방 가는 오늘 숲길이 더 소중하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