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간은 주로 나무와 숲, 생태에 관한 책을 읽었다. 시끄러운 인간 세상살이보다 말 못 하는 나무와 풀, 자연 이야기가 읽기도 편하고 마음을 두기 편했다. 나무가 자라는 이야기, 나무마다 생태와 구별하는 법, 숲속을 걷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먼 나라로 트래킹을 떠난 이야기.
그러나 두어 달 전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나무, 자연, 여행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을 수 없다. 억지로 읽으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을 편히 해주던 책이 이젠 그렇게 편하지 않다.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미 마음에 다른 것이 그득하게 차 있기 때문이다. 전에 즐겨 보던 책을 펼쳐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이 콩닥거린다. 다른 데 한눈팔다 버스를 놓쳐 버릴까 불안한 마음과 비슷하다.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멍청하게 생각 없이 TV와 유튜브를 볼 때가 많았다.
며칠 전부터 겨우 다시 책을 읽을 기운을 차렸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와 숲 이야기 책은 볼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이야기를 찾는다. 불안을 가라앉히고 답답함을 풀어줄 책을 찾게 된다.
대통령이 군대를 앞세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다니,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린 시절 겪은 쿠데타를 이번 생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소설 소재로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어찌어찌하여 반란 우두머리를 구치소에 처넣었지만, 그와 패거리는 여전히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추종자들은 전보다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한 실마리, 정신을 차릴 지혜가 필요했다. 나 혼자만 이런 것이라면 내 탓만을 하면 되는데, TV에 나오는 정치인들, 유명인들도 내가 느끼는 마음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유럽,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고 믿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몇 년간 적지 않게 보아 왔다. 바로 이웃 나라에선 다시금 군국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고, 미국에선 트럼프가 재집권하고 유럽에선 파시즘 극우 정당이 발호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할리우드에선 내전이 영화, 드라마 소재로 냉전과 제3세계 독재를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몇 년간 계속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극우세력의 준동이 도를 더하는데도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니.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가 마치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변치 않는 굳건한 것이라고 믿다니. 아무 근거도 없이.
돌이켜 보면 독재체제를 신봉하는 무리가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민주 체제를 뒤엎고 다시금 독재 시대로 돌아가려 시도할 것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는 동기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는 군인들이 21세기에는 없을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쿠데타에 앞장선 장군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대통령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박정희, 전두환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3대 세습 독재 정권이 북에 버티고 있는데도 그들을 지렛대 삼아 총풍,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반민주 매국 수구 정치가들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국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대통령이 반란을 일으켜도 그를 지지한다는 국민이 1/3이나 되는데도, 쿠데타는 불가피했으며 정당한 통치 행위라는 주장에 모든 국민이 눈곱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고 손절할 것이란 믿음은 전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윤석열과 반민주 체제 신봉자들의 독재 회귀 쿠데타가 이 땅에서 일어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왜 한 번이라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일까. 몇몇 사람들이 위험을 경고했을 때 조금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 하나만 바보 같았다면 나 자신만 탓하면 되겠지만 어떻게 수천만 국민이 나와 같았단 말인가. 나 같은 국민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하고 다룰 국가기관, 정치인, 언론인, 나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지식인들은?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럴 위험이 오래전부터 싹트고 커져 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충격과 분노에 거리로 뛰쳐나갔던 국민들은 두 달이 넘는 동안 매일 받아들이고 처리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현실 상황에 지쳐가고 감각은 둔해져 갔다. 나도 그렇다.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고 납득하게 해 줄 책을 찾게 된다. 희망을 품기를 바라지만 희망이 아니더라도 지친 마음을 다독여줄 말을 찾았다. 상처를 들춰내고 소금 뿌리는 책은 읽기 어렵다. 현실에서 멀리 도망치는 책은 오히려 불안을 키우기만 한다.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납득시켜 줄 책, 지쳐버린 심장을 다독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데 힘이 되어줄 책, 그런 책을 찾게 된다.
죄지은 자들이 벌받고, 우리를 위협한 위험을 모두 없애고, 더욱 민주주의 체제를 튼튼히 할 새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지금의 마음 상태가 계속될 것만 같다. 아마 나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체제 전복 세력들이 다시 흔들지 못할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에 답을 할 수 있어야 예전처럼 나무와 꽃, 자연과 그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다시 생각하고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마음에 위안이 된 책은 이런 것들이다.
-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생각의길

윤석열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반년 전인 지난 여름에 펴낸 책으로 유시민은 윤석열이 독재자이며, 독재 체제를 꾀할 것임을 확신하였다. 친위 쿠데타 가능성을 경고한 몇 명의 사람들처럼 그 역시 윤석열과 집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독재 체제를 꾀하리라는 것을 경고하고, 국민들이 가야 길을 제시하고 있다. 윤석열이 실행한 방법은 유시민의 예상을 뛰어넘는 폭력적인 것이었지만 쿠데타로 이루려 한 것은 완벽히 일치한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두 달 만에 처음 희망을 품게 되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 에르난 레예스 알카이데, 가톨릭출판사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 공동체는 맞닥뜨린 문제에 전례 없이 공동의 인식을 갖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가, 집단 간 이기심과 불평등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지만, 이를 통해 지구 공동체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희망을 품게 되었다.
교황은 기후 위기, 인류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열 가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학대 문화, 기후 위기, 거짓 뉴스와 혐오의 악순환, 공동선에 헌신하는 정치, 전쟁, 이주민과 난민, 여성 참여, 가난한 나라의 성장, 건강할 권리 보장, 하느님의 이름을 내거는 전쟁 조장 문제는 세계와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이다. 앞으로 더 튼튼히 세울 민주 국가에서 우리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관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틀이며, 국민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해결을 보장하는 길이다. 열 가지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해 가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 더 튼튼하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 『어두운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다산초당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 브라질에서 작가로 살아가다, 2차 대전 종전을 눈앞에 두고 아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슈테판 츠바이크는 최악의 절망과 비극적 현실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현실에서 전쟁의 악함과 비극은 나와 동떨어진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생활에서 나와 이웃 속에서 실재하는 것이기에 끔찍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지 끈질기게 탐구하고 있다. 절망감에 스스로 생을 마치는 날까지 그는 희망을 찾았다. 그가 느꼈을 절망은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리라. 희망을 찾는 그의 이야기, 그의 생각을 통해 나도 희망을 품고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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