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배달된 종이상자에서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보니, 다섯 권의 책이 크기도 다르고 분야도 제각각이다. 시집, 과학, 스포츠, 순례기, 식물 백과사전. 한 해 동안 산 책을 생각해 보니 이런 식으로 맥락 없이 책 사는 것도 버릇 같다. 관심사가 산만해서인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굳이 어울릴 필요도 없지만) 분야 책들을 같이 주문하곤 한다.
그래도 종이로 된 책을 산 것은 오랜만이다. 해마다 새로 책을 사서 쌓아두다 보면 어느샌가 둘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면 책장에서 이제 안 볼 것 같은 책들을 골라내 기부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책값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아까울 때도 있다. 대개 한 번 읽고 말 뿐인데, 이것도 욕심이고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몇 해 전부터는 사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는 책이 많다. 꼭 갖고 있어야겠다 싶으면 이북(ebook)으로 사곤 했다. 그러나 종이를 넘기며 풍겨오는 종이와 잉크 냄새, 손가락에 전해지는 촉감의 유혹은 의외로 강하다. 때때로 유혹에 굴복하고 그래서 책장 옆 바닥에는 또 책이 쌓여간다. 이번 주말엔 또 꺼내보지 않을 거 같을 것 같은 책을 몇 권 골라 기부하러 가겠지.
마음만 먹으면 집과 직장에서 멀지 않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수 있지만, 보려는 책은 가까운 규모가 작은 도서관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소설이나 수필이 아니고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은 대부분 근처 도서관에는 없다. 도서관이 제공하는 이북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남들이 안 보는 이상한 책만 고르는 것은 아닐 텐데, 도서관이 책을 살 여유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보고 싶은 책을 도서관의 희망 도서 신청 코너에 접수해 놓고 기다렸다가 책이 들어오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지만, 신청할 수 있는 수량도 제한이 있고 신청한 것도 뭔가 사정으로 선정이 안 될 때가 있다.
요즘 도서관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서 인터넷으로 어느 도서관에 어느 책이 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반납 비용만 부담하면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닌 곳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어려움이 없다. 보고 싶은 책이 어디에 있는지 검색하고 발품을 팔면 보고자 하는 책은 거의 모두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다. 대학 도서관 중에는 재학생이 아닌 졸업생이나 시민도 도서관을 이용하고 책을 빌려볼 수 있게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도 난 책을 쉽게 빌려 볼 수 없다고 자주 툴툴거린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누굴 탓할 일은 아니다. 그냥 내가 욕심이 많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거다. 욕심을 줄이고 조금 더 부지런하고 감사할 줄 알면 되는데 사치를 부리는 거다. 다른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내년에도 난 도서관도 가고, 이북도 사고, 종이책을 사기도 할 것이다. 또 쌓인 책을 덜어내기도 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 책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새해에는 책과 함께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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