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의 그곳] 작품 ‘우주사고’

어쩌면 지리산둘레길 모든 구간에서 가장 뜻밖의 경험이랄까.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딱 맞닥뜨렸을 때 겪게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게 여기 있다고?”

지리산둘레길 위태-하동호 구간 중간 조금 지난 곳이다(경남 하동군 옥종면 양이터재). 콘크리트로 포장한 임도 내리막길 한쪽에 부서진 자전거가 쓰러져 있다. “누가 이런 데 자전거를 버렸나.” 혼잣말했는데 바닥에 금속 푯말이 붙어 있다.

우주사고
Artist 2창수

지구 이외의 것에도 생명이 있다는 상상은 이티를 통해 시작되었다. 어른이 된 2015년 외계인의 실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지리산으로 ET를 초대했다. 영화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지리산으로 오던 ET는 불행히도 절개지에 부딪혀 사망한다. 사고 원인은 이전에 그려놓은 지형이 달라져 없던 절개지가 생겼기 때문인데 인간 편의의 방법이 우주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러나 ET는 죽은 다음에도 아직 인간에 대한 희망을 남겨 놓아서 밤이 되면 보이는 작은 불빛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이 옅은 빛은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영험한, 요상한 기운이 있다고 지리산에서 2015년부터 전해지는 전설이다.

“헐~!”
“E.T가 자전거 타고 가다 여기서 사고로 죽었다고? 저게 E.T가 타던 자전거라고?”

내가 아는 E.T는 우주선을 타고 고향별로 돌아갔는데, 여기서 허무하게 죽었다니 얼마나 황망한 일인가. 더구나. 더구나 그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구별 대한민국 지리산자락에서 사고로 삶을 마친 E.T의 이야기.

누가 이런 생각을 해낸 걸까. 예술가 2창수. 이름도 특이하다. 아직 낮에는 한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은 9월 초, 땀에 전 몸으로 걷다 부서진 자전거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하고 웃고 궁리한다. 이게 뭐라고. 2창수란 ‘Artist’도 궁금하고, 왜 하필 외계인 E.T이며, 넓디넓은 지구별중 지리산일까.

절개지, 인간에 대한 희망, 소원, 2015년. 궁금함을 풀 힌트다. 2015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이 ‘예술 작품’은 인간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희망은 있으니, 소원을 이루자는 메시지.
유명하다는 미술관에서도 이렇게 오랜 시간 마주한 예술 작품은 없었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몸은 가뿐해져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2015년 지리산에서 사고로 죽은 E.T에 관해 찾아보았다.

“지리산 프로젝트”

2014년부터 지리산 둘레에서 살아가는 지역 시민 단체, 종교 단체, 예술가들이 지리산을 살리고 생명·평화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뜻을 모아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명맥이 끊어질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2창수 예술가의 작품 ‘우주사고’는 2015년 진행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먼지 하나에도 우주가 담겨있다, 우주는 모든 가치를 존중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분법적인 사고로 생명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지리산의 역사와 내력을 통해 성찰하면서 ‘생명·평화’ 가치를 살리려고 한다. 여기에 우주예술을 융합하여 공동체 예술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려는 뜻을 주제에 담으려 했다.”

당시 프로젝트 예술 감독을 맡은 김준기 씨의 말로 이 프로젝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나라에서 계획을 세워 만든 길이 아니다. ‘지리산 프로젝트’처럼 지리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들고 가꾸는 길이다. 이 길이 다른 국가 숲길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지리산둘레길은 특별하고, 자연의 길이기도 하고 사람의 길이기도 한, 사람과 자연을 잇는 길인 이유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늘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다툼도 있다. 생명과 평화의 목소리, 죽음과 파괴의 목소리가 늘 시끄럽다.

댐, 케이블카, 골프장, 자동차 도로, 터널. 이곳에선 힘 있는 자들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산과 내를 토막 내지 못한다. 지리산과 길에서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을 생명의 터전으로 딛고 사는 사람들은 지리산을 어머니로 여긴다.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구인들이 함부로 산허리를 잘라내서, 이를 알지 못하고 지나던 E.T가 잘린 산에 부딪혀 죽고만 범우주적 사고였다. 분별없이 자연을 파괴한 결과 생명을 잃게 된 것이다.

2015년 이 작품을 처음 설치했을 때 사진을 보면, 내가 본 것과는 좀 다르다. 먼저 바닥에 흰 페인트로 “God sent his son”이라고 적혀 있다. 그 아래는 붉은 페인트로, 사고로 쓰러진 E.T 몸 윤곽을 그리고 있다. 자전거는 앞바퀴 절반이 땅에 파묻혀 뒷바퀴가 하늘로 향해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갔던 2019년 9월 초에는 페인트 자국은 희미하고 자전거는 옆으로 뉘어져 있었다.

E.T가 타던 자전거는 지금 없어졌다고 한다. 쓰레기인 줄 알고 누군가 치운 것인지, 고쳐 타려고 가져간 것인지, 아니면 E.T 고향별 친구들이 가져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길을 지난 사람들 기록을 찾아보면 2021년 여름에는 자전거가 있었는데, 2023년 2월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사이에 없어졌다.
이 길을 다시 걷게 되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아쉽다. 이곳이 사고 난 곳임을 알리는 금속 표지는 아직 남아 있어, 지구별에서 안타깝게 삶을 마친 E.T를 추모할 수는 있겠다.

이기심으로 산허리를 무참히 자르고 파헤치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비극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리산과 둘레길은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사람들에게 깨우치고 삶을 변화시키는 어머니 품이다.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며 걷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지리산프로젝트
http://jirisantrail.kr/wp/?page_id=12185

우주사고 지점
https://kko.to/6USKpTEW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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