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노고단에서 만난 들꽃

짚신나물, 모시대, 물봉선
큰뱀무, 둥근이질풀, 동자꽃
원추리, 어수리, 참취
곰취, 노루오줌, 갈퀴덩

8월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다. 아무리 지리산이 좋아도 8월 땡볕 더위는 피하는 게 좋다. 그런데도 지리산에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노고단이다. 성삼재까지 차로 오를 수 있지 않았다면 애초에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그때도 8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높이 태양이 눈 부시던 날,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던 적이 있다. 더위를 피해 새벽에 올랐기 망정이지 한낮이었다면 오르다 포기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은 이미 온도계가 30도를 넘긴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기어가도 한 시간이면 오르니, 쉬엄쉬엄 가면 이 더위도 별거 아니라고 여기도 오르기 시작한다. 성삼재휴게소에서 바라보는 구례 읍내와 섬진강이 손에 잡힐 듯하다. 노고단에서도 섬진강을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탐방 안내소를 지난다. 급하지 않은 경사와 평탄한 길,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햇볕을 그대로 쬐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생각보다 덥지 않다. 그렇다. 여긴 이미 해발 1,000미터가 넘는다. 저 아래 땅보다는 훨씬 기온이 낮다. 오를수록 더 시원해지겠지. 나도 모르게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며 오른다.

지리산처럼 고도가 높은 산은 풀과 나무가 자라는 모양이 산 아래와는 많이 다르다. 저 아래 땅이 4, 5월에 한창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짙은 잎으로 하늘을 덮지만, 높은 산 위는 7, 8월 한여름에도 이어달리기하듯 쉼 없이 꽃을 피운다. 산위는 오히려 여름에 꽃잔치가 펼쳐진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도 7월에 가장 많은 나무와 풀이 꽃을 피운다.

몇 걸음 떼었을 뿐인데 길가에 노란 작은 꽃잎이 옥수수처럼 핀 꽃이 보인다. 짚신나물이다. 작지만 선명한 노란 꽃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노고단까지 잊을 만하면 나타나 반겨준다. 산에 피는 꽃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동네 뒷산처럼 자주 오르지 못하는 산에 피는 꽃 이름은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사진을 찍고 나중에 찾아본다.

원추리는 꽃이 크고 색도 노랗게 선명해서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지리산에는 어디를 가나 원추리가 많이 자란다. 어렸을 적 산에서 꺾은 꽃핀 원추리를 꽃병에 꽂아 두고 며칠이고 마주 보며 어쩜 이렇게 예쁘고 화려할까 감탄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 그 느낌 그대로다. 대부분의 들꽃이 소박하게 피는 것과 달리 원추리는 잔뜩 자신을 뽐내고 있다.

노루오줌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름은 늘 헷갈린다. 비슷한 모양을 한 것들이 많아서다. 왜 노루오줌이란 이름을 갖게 됐을까.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게 맞는지 어찌 알겠는가. 난 노루오줌 냄새를 맡아본 적도 없고 노루가 사는 곳에 가본 적도 없다.

물봉선은 꽃 모양이 하도 특이해서 한번 이름을 들었을 뿐인데 금세 기억하게 됐다. 꽃을 가만히 살펴보면 무슨 이유가 있어 이런 모양을 갖게 되었을까, 이유가 궁금하다. 다 자연의 섭리일 텐데, 물론 벌과 나비를 꼬여 수분을 쉽게 하려는 고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왜 굳이 이 모양인지 특이하다.
활짝 핀 동자꽃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이름이며, 독특한 줄기와 잎 모양. 한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 기억에 없다. 내 눈에만 띄지 않았던 것일까. 산에서 자주 만나면 좋겠다.

다섯 장의 노란 꽃잎을 가진 꽃은 많다. 꽃 모양만 보고는 이름을 알기 쉽지 않다. 양지꽃을 닮기도 했지만 긴 줄기와 독특한 잎새는 다른 식물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노고단대피소를 지나자 가파른 돌계단을 한동안 오르자, 키 큰 나무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정상까지 전망이 탁 트인다. 풀밭과 작은 키 나무들이 시선이 닿는 끝까지 펼쳐진다.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나무가 없으니 키 작은 녀석들 세상이다. 낮은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둥근이질풀이 여기저기 떼를 지어 피어있다. 이렇게 많이 피어 있는 둥근이질풀은 처음이다. 보랏빛 꽃잎들이 초록 풀밭 이부자리에 예쁘게 수를 놓고 있다.

어수리를 처음 본 것은 강원도 선자령 풀밭에서였다. 무릎 위까지 자란 풀밭에 더 큰 키로 굵은 가지 위에 크게 핀 꽃이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본 어수리만큼 크지는 않지만, 노고단 주변 곳곳에 삐쭉삐쭉 어수리가 키 작은 아이들 사이 키 큰 아이처럼 솟아 있다. 쌀알만큼 작은 하얀 꽃은 도무지 벌과 나비 눈에 띌 자신이 없는지 수백, 수천 송이 무리 지어 마치 커다란 꽃 한 송이인 척한다. 그럼에도 그 존재감은 한 송이 원추리에 미치지 못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여기저기 자라 꽃 피운 것을 보면 벌과 나비 눈에 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지고 노고단이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꽃이 얼굴을 비춘다. 무냉기를 지나자, 초롱 모양의 꽃들이 줄에 매달린 듯 피어있다. 모시대다. 꽃이 피지 않은 모시대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런데 꽃이 핀 모시대는 오랫동안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구례에서는 갈퀴나물을 자주 보게 된다. 섬진강 주변에서도 흔히 보게 되고 밭고랑에서도 보게 된다. 지리산 노고단에서도 만나게 되니 반갑다. 갈퀴나물꽃은 보라색의 신라시대 옥구슬 모양으로 귀여워 만져보고 싶어진다.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길. 양옆으로 길쭉길쭉한 노란 꽃잎을 늘어뜨린 꽃들이 뭉쳐 화려한 장식물처럼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은 이미 수분을 마쳐 꽃잎은 곧 질 것이다. 다행히 난 아직 남아 있는 꽃 모양을 볼 수 있었다. 곰취꽃은 화려해서 꽃에만 눈길이 갈 뿐 줄기와 잎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꽃 피기 전 봄엔 봄나물로 먹을 여린 잎을 따러 두리번거렸을 텐데 꽃이 피자 잎에는 관심도 없다.

곰취 옆, 작고 하얀 꽃잎을 수십 개 단 참취꽃이 피어 있다. 참취꽃과 까실쑥부쟁이꽃은 언뜻 보면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나물 중 최고라서 ‘참’자가 붙었다는데 밥상에서 자주 취나물로 자주 보는 걸 보면 맞는 말 같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마음을 이끄는 지리산. 한여름 지리산의 가장 큰 매력은 들꽃이 아닐까.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고 숨을 헐떡이며 오르면, 지금의 내가 아닌 어린 시절 뛰어놀던 들판과 산에서 수없이 보던 들꽃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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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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