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니 카라인드로우 – 아다지오(“아버지 주제곡”)

엘레니 카라인드로우 – 아다지오(아버지 주제곡) 영화 “안개 속 풍경”에서
Eleni Karaindrou: Adagio(Father’s Theme) from “Landscape In The Mist”

이 노래는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안개 속 풍경(Landscape In The Mist)'(1988년)의 배경 음악 중 하나로 ‘아다지오 Adagio’, ‘아버지 주제곡 Father’s theme’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를 듣기 전 엘레니 카라인드로우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다. 이 노래 역시 처음이었다. 그러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시작부터 오보에 소리는 내 마음을 잡아 물밑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물속에 잠겨 심장의 박동이 크게 귀에 울리는 느낌, 연주 내내 미지의 불안이 내내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우울하다기보다는 불안이 가득한 소리다. 끊임없이 걸어가는데,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길은 안개 속으로 나 있고 나는 쉬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걸음을 옮긴다. 걸을 때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가슴에서 온몸으로 전해진다. 끝내 안개 뒤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계속 나아갈 뿐이다. 곡이 끝난 후에도 계속 걸어갈 것이다.

마치 이 느낌은 이른 새벽안개가 나지막이 깔려 나무와 길의 형체가 희미한 숲길을 걸을 때와 비슷하다. 나는 산에서 내려가고 있다. 길은 희미하고 눈길이 닿는 끝에선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곳으로 가면 길이 있고 결국엔 산 아랫마을에 닿을 거라고 여기고 걸을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하다. 안개가 깔린 산에서는 서두르면 길을 잃는다. 한 발 한 발 길이 난 방향과 표식을 잘 확인하면 길을 잃을 일이 없다. 내가 지금 있는 위치와 방향을 알 수 있다면 길을 잃지 않는다. 정 알 수 없을 때는 멈추는 것이 낫다.

이 노래는 영화 제목 ‘안개 속 풍경’과 딱 어울린다. 느낀 대로 안개 속을 걷는 것은 같았으나, 영화 속 주인공 남매가 걷는 길은 숲길이 아니다. 정말 있는지 알 수 없지만(영화에선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에 있다고 믿는 아버지를 찾아 어린 남매는 계속 길을 간다.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반전은 없다. 잦아드는 오보에 소리는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매는 계속 길을 갔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어떤 때는 안개 속 길을 걷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도 약속해 주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없고 보이지 않아 불안에 떨 수도 있다. 보이지 않지만, 그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알고 계속 걸어갈 수도 있다. 불안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게 확실한 삶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이 노래를 듣고 난 후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 것은 길을 계속 가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눈부시게 빛나는 미래. 그런 미래는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미래는 희뿌연 안개에 덮여 있지만 그곳에 꼭 있을 길과 같은 것이다. 희망이란 뚜렷하지는 않지만, 안개 속에 있을 길과 같은 게 아닐까.

난 우울과 불안이 깔린 노래가 좋다. 거기에 빠져 허우적일 수 있지만, 빠져 죽지는 않는다(‘글루미 선데이’는 예외). 우리 곁에 있는 노래에는 불안, 침묵, 어둠, 희망, 갈망, 탄식과 기쁨이 모두 있다. 우리 삶이 그러한 것처럼. 노래는 우리 감정을 더 키우기도 하고 낯설게 거리를 두게 하기도 한다. 공감하고 희열을 느끼게도 하고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게도 한다.
불안함이 엄습하여 놓아주지 않을 때 ‘안개 속 풍경’ 아다지오를 듣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이 노래를 쓴 그리스 출신, 엘레니 카라인드로우(Eleni Karaindrou)는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20년 넘게 함께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의 주제, 분위기와 음악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영화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하나의 앨범으로 만들어진 노래처럼 독특하고 일관된 느낌을 받게 된다.
엘레니 카라인드로우는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 음악도 많이 썼는데, 역시 느린 곳이 대부분이다. 배경음악이라는 특성 때문일까. 그렇지만 우울하지 않은 살짝 흥이 나는 곡들도 있다. 그런데 난 역시 느리고 우울한 곡이 더 좋다.

앨범들

  • 1991년, Music for Films
  • 2010년, Music for the Theatre (Twenty-Two Plays) [1986-2010]
  • 2014년, Music For Greek TV Series (Original Recordings 1976-1989)
  • 2015년, Music and Songs for the Theatre (Goldoni, Chekhov, Shakespeare, Turgenev, Miller, Griboyedov, Gorky, Beckett, Pinder)
  • 2017년, Pothοi Kato Apo Tis Lefkes / Glyko Pouli Tis Niotis (Soundtrack from the Theatrical Plays)

Adagio (Var. 1990)
Album: Music for Films
Eleni Karaindrou, Vangelis Christopoulos, String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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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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