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켜니 며칠 전 이 세상을 떠난 김민기 선생의 노래와 다큐멘터리 영상이 이어진다. 스피커 소리는 신경 쓰지 않고 할 일을 하다 가끔은 ‘저 사람도 김민기 선생과 인연이 있었나?‘ 고개를 들고 모니터 화면을 쳐다본다. 사람의 말을 그다지 잘 믿는 편이 아니라서 이내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에 집중한다.
노래가 흐른다. 그러나 김민기 노래는 아니다. 익숙한 곡, 나도 아는 노래. 그러다 순간 얼음이 되었다.
“단 한 번 눈길에 터져 버린 내 영혼”
영혼이 터진다, 그렇다. 터진다는 표현이 있었지. 영혼이 터지다니… ‘깨닫다, 가슴에 꽂힌다, 충격을 받다, 감동하다’. 이런 단어가 아닌 뭔가 강렬한 것이 필요했다. 이 순간 전과 후를 칼로 잘라내듯 구별할 수 있는 뭔가가 말이다. 쓰던 글의 한 꼭지에서 오랫동안 적당한 단어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찾던 표현이다.
굳은 채 노래를 들었다. 2절, 아까와 같은 곳.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영혼이 터져 버리고, 부서진다. 이전의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다. 이전의 나는 이제 없다. 눈 앞 세상은 어제와 다르고, 어제와 다른 세상에 어제와 다른 내가 있다. 이것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도 있다. 개벽이라고도 한다. 말하고 듣는 어감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다.
흔히들 가진 것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하니까 내 옆에 놓고 소유하려 한다. 연인을, 가족을, 친구를, 반려동물을, 나라를, 민족을, 신을. 사랑의 이름으로 소유하려 하고 빼앗으려,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사랑하지만 불안하고 성에 차지 않는다. 늘 허기진다.
사랑은 영혼이 터져 버리고 부서져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영혼의 단짝을 만나 서로를 알아채는 순간, 세상에 태어난 나의 아이를 만나는 순간,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날, 우주를 꿰뚫는 초월적 존재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송창식은 이 노래를 신과 인간과의 만남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어느 방송에서 얘기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면 또 어떤가.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아내를 졸업 후 한참 시간이 지나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 한눈에 사랑하게 되어 고백하고, 보름 만에 처가에 가서 허락을 받았다니, 그에게 아내와의 만남과 사랑은 ‘단 한 번 눈길에 영혼이 터져버리고 부서지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이런 것이라면 신이 만든 모든 형체가 있고 없는 모든 것과의 사랑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신의 섭리를 깨닫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아마도 송창식은 그 무렵 그런 생각을 하고 이 노래를 지은 것이 아닐까 나는 미루어 생각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미친다’가 있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하려고 할 때 ‘미쳐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일에 미치다, 사랑에 미치다, 게임에 미치다, 종교에 미치다. 그러나 미친다는 것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게 있는데, 과정이 찰나이고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하고 오랜 시간을 들인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사랑으로 포장해도 사랑이 아니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어찌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랑으로 포장한 것이 많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와 노력만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터져 버리고 부서져야 깨달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이 그 무엇이든.
송결, 송창식 작곡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 놓으셨나요
어느 별 어느 하늘이 이렇게
당신이 피워 놓으신 불처럼
밤이면 밤마다 이렇게 타오를 수 있나요
언젠가 어느 곳에선가 한번은 본 듯한 얼굴
가슴속에 항상 혼자 그려보던 그 모습
단 한 번 눈길에 터져 버린 내 영혼
사랑이야 사랑이야 음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시냇물 하나 이렇게 흘려 놓으셨나요
어느 빛 어느 바람이 이렇게
당신이 흘려 넣으신 물처럼
조용히 속삭이듯 이렇게 영원할 수 있나요
언젠가 어느 곳에선가 한번은 올 것 같던 순간
가슴속에 항상 혼자 예감하던 그 순간
단 한 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사랑이야 사랑이야
*** 이 노래 악보나, 가사를 보면 ‘터져 버린’과 ‘부서진’이 어디서는 1절에, 다른 곳에서는 2절에 나오는데 노래를 들어보면 1절에 ‘터져 버린’, 2절에 ‘부서진’으로 되어 있다. ‘터져 버린’이 더 강렬하지 않나? 내 생각엔 ‘터져 버린’이 먼저 나오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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