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asons, Op. 37b 6: ‘June: Barcarolle’
Pyotr Ilyich Tchaikovsky
우울한가?
우울함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차라리 우울에 나를 몽땅 빠뜨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남는 것은 헤어나오는 것 밖에 없으니.
우울은 어느 때부터인가 내게 친구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가끔 우울이라는 ‘존재(존재일 수 있나?)’와 대화를 하기도 한다. 우울과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 듣는 노래 중 하나가 차이콥스키의 ‘뱃노래’다. 파도의 일렁임같은 우울한 선율이 끝없이 이어진다. 격정으로 몰아가지도 않고 우울이 걷힌 희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우울의 손을 잡은 채 일렁임에 몸을 맡긴다. 등을 토닥인다.
노래가 끝나면 눈을 뜨고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 6월을 맞는 밤에 쓰다만 것인데, 우물쭈물하다 덮어 두었다. 그러다 두 달이 다 되는 날 들춰보고 마저 쓸까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 이걸 쓴 날은 우울했나 보다. 그날의 기분은 그대로 두는 게 낫다. 그날의 우울을 오늘 이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우울함이 찾아오면 뱃노래를 듣자. 그럼 다시 이어 쓸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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