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그리고 무지와 위험 사이

연일 장맛비로 맑은 하늘을 본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비가 쏟아질 때도 있지만 대개는 우산만 있으면 걷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되풀이한다. 오히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더위도 견딜 만하다.

한여름에 산길을 걷기는 쉽지 않다. 살갗을 찌르는 듯한 햇볕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금세 숨을 막히게 하는 습한 공기다. 더운 기온에 몸은 열을 식히려고 열심히 피부 모든 모공으로 땀을 뿜어내지만, 체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공기는 이미 습기를 잔뜩 머금어 땀을 말리지 못하고 피부를 따라 그대로 흐르게 한다. 그래서 차라리 구름 끼고 적당한 비가 내리는 날이 걷기 좋다. 비를 맞으며 하는 등산을 ‘우중 산행’이라고 하여 적당히 비가 내리는 날을 골라 산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일부러 비 오는 날을 기다려 산에 가지는 않지만, 간혹 산길을 걷다 비를 만나기도 한다.

오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니 ‘우중 산행’을 일부러 즐기는 듯한 사진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중에는 꽤 높은 봉우리까지 오른 사진도 적지 않았다. 국립공원은 날씨 예보에 따라 적절히 등산로를 통제하기 때문에 알림에 따라 오르면 별문제야 없겠지만, 등산로 통제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산에서는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간혹 비옷과 등산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비 맞은 생쥐 꼴로 흠뻑 젖은 채 산 위에서 찍은 사진이 SNS에 자랑처럼 올려지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지나친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람들은 어쩌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운 좋게 살아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

산에서는 아래 평지와 달리 날씨가 눈 깜짝할 사이 급격하게 변한다.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우리나라 산은 5월에도 큰 눈이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기온이 영하라는 것인데, 산 아래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는 기온이어도 산 위에서는 순식간에 걷기 어려울 만큼 큰 눈이 내릴 수도 있다. 이런 날은 산에 오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추위와 눈에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해발 고도가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0.65℃씩 떨어진다. 설악산 대청봉이 해발 고도 1,708m니까 속초 바닷가가 20℃일 때 대청봉 기온은 8.5℃가 된다. 또한 산 위에는 산 아래보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바람이 초속 1m마다 기온은 0.6℃씩 내려간다. 대청봉은 4월에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데, 초속 20m 이상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기온은 바람이 불지 않을 때보다 12℃나 더 내려간다. 바람이 불지 않는 속초 바닷가 기온이 20℃일 때 바람이 초속 5m로 부는 대청봉 기온은 5℃가 된다. 그러나 체감온도는 훨씬 더 낮아지는데, 풍속 1m/s마다 1.6℃씩 내려가서 대청봉의 체감온도는 0℃ 가까이 된다. 이 정도 기온이면 겨울용 옷을 입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산의 등산로는 대부분 계곡이나 능선을 따라 나 있는데, 산 아래쪽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많은 비가 내릴 때는 갑자기 계곡물이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 특히 산 아랫부분 계곡은 산 전체에 내린 빗물이 계곡을 따라 깔대기처럼 모여들어 둑이 터져 쏟아져 내리는 물처럼 갑자기 불어날 위험이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등산로를 미리 잘 파악하고 계곡 등산로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도 기상 파악을 철저하게 하지 않고 날씨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여 산에서 위험에 빠졌던 적이 있다. 맑고 푸른 하늘만 믿고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비에 대한 준비 없이 산에 올랐다가 기상이 급변하여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만나 다행히 방수 재킷은 있었지만, 하반신은 완전히 젖고 체온이 떨어져 입술이 파랗게 질린 채 두 시간 넘게 온몸을 떨며 산에서 내려온 적이 있다. 그 후로는 아무리 여름이라도 위아래 비옷과 보온용 옷, 열을 낼 비상식량을 꼭 배낭에 챙기고 있다. 물론 일기예보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이웃들과 더위를 피하러 아침가리골로 계곡 산행을 간 적이 있는데, 역시 일기예보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하여 비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적은 비만 내릴 것으로 여기고 떠났다. 짙은 숲과 소리도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발도 담그며 놀다 기분 좋게 산에서 내려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적은 비는 예상했기에 다들 준비한 비옷을 입고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계곡 길을 걸었다. 그런데 등산로 옆 흐르던 물이 불어 등산로로 넘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무릎,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일행은 당황해서 등산로를 벗어나 산 위쪽으로 올라섰는데, 내려가는 길은 이미 모두 물속에 잠겼다. 지도를 펴고 한참을 돌아가는 길을 찾았다. 그렇게 예정에 없는 길을 찾아 나서자 좀 전까지 들떠있던 분위기는 간데없이 모두 긴장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몇 시간을 더 쓰느라 체력도 떨어지고 비옷에도 불구하고 젖은 몸은 추위에 떨고 있었다. 겨우 등산로 입구 부근에 이르렀지만, 졸졸 흐르던 시냇물에서 커다란 내로 변한 물길이 가로막고 있었다. 여름철이면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라 다행히 소방대원들이 미리 출동해서 하천에 설치한 로프 덕에 모두 무사히 내를 건너 돌아올 수 있었다.

산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낙관과 방심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괜찮을 거야’, ‘별일이야 있겠어?’라는 마음이 위험을 가져온다. 위험은 항상 이런 틈을 노리고 찾아온다. 그리고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지’다. 알지 못하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산에서뿐 아니라 직장, 일상생활에서도 알지 못해 겪는 위험은 정말 많다. 가스, 전기, 자동차, 기계를 쓰기 전 우리는 사용법을 미리 배운다. 알지 못하면서 이런 것을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산에서는 알지 못하면서 용감해지는 것일까. 무지한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이 얘기는 다른 기회에 하기로 하고), 무지의 결과는 개인이 지게 된다. 운전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운전하지 않는 것처럼, 산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알아야 할 것은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살면서 알아야 할 많은 것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그 책임을 개인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은 옳은 사회가 아니다.

수백 미터 바위산을 오르면서 동네 달리기용 운동화를 신고, 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에 오르면서 재킷, 비옷도 없이 레깅스에 물병 두 개만 달랑 어깨에 달고 오르고, 서너 시간 산을 오르는데 먹을 것 하나 없이 가는 것은 만용이라기보다는 무지가 아닐까. 이에 따라 겪게 되는 위험은 개인이 지겠지만 개인만을 탓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산을 수십 년 했지만, 등산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몰라서 등산을 공부했다. 공부하려고 등산학교를 찾아가서 공부하고 하는 김에 자격증도 따게 됐다. 모든 사람이 자격증을 딸 필요야 없겠지만 나와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하게 산을 즐기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알고, 준비할 것은 준비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겠다. 산에서 찍은 멋진 사진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위험하기 그지없는, 무지한 사진은 인제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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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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