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선생의 소식을 듣고

뉴스를 잘 찾아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세상 소식을 남보다 늦게 아는 경우가 많다. 아침 사무실에 나와 차를 마시고 의자 깊숙이 기댄 채 한참 게으름을 떨다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데 구석 작은 뉴스 알림에 ‘김민기 별세’라는 작은 글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마우스를 클릭하자 그의 소식이 화면을 채운다. 다섯 글자를 큰 활자로 그의 죽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의자에 쓰러지는 몸을 묻었다.

갓 대학생이 된 나는 교정과 시장 술집, 과사무실에서 듣게 된 노래는 대부분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TV와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는 지나는 길가 가게에서나 들을 수 있었고, 나는 생소한 노래들에 익숙해졌다.

소위 데모가로 불리는 노래와는 결이 다른 노래 몇 곡이 귀에 타자기 글자처럼 새겨졌는데, 아침이슬, 상록수가 그랬다. 학교 앞 술집에 가면 늙은 군인의 노래, 친구, 작은 연못, 공장의 불빛을 자주 듣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도 가락을 흥얼거리고 가사도 자연스레 기억하게 되었다. 그의 노래가 들리고 마음에 새겨진 것은 당연했다. 어느 노래와도 다른 독특함. 사람들 이야기처럼 들리는 가사. 노래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 노래들을 지은 이가 김민기라는 것은 좀 지나서 알게 되었다. 이때까지 작곡가라면 TV에서 줄곧 보던 박시춘, 김희갑 같은 이들을 떠올렸다. 그가 음악이 아닌 미술을 전공한 것도 뜻밖이었지만, 노래 가사도 대부분 그가 썼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산 후 노래 가사를 자세히 읽게 되었다. 그의 노래는 곡과 가사가 따로가 아닌 하나였다.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이야기에 리듬과 박자가 있다. 노랫말에는 한자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단어도 없다. 우리가 살며 이야기하는 말이다. 우리말에 대한 그의 애정은 노랫말에도 그렇게 드러나고 이후 그가 쓴 연극, 뮤지컬 대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 김지하로부터 깨우치게 되었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노랫말이 노래와 따로가 아니라 부르고 들으며 생명을 갖게 하는 진정한 가객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의 노래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헤아릴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과 불안, 고통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며 손을 맞잡고 다독이며, 잠을 청하고, 또 새로운 날을 맞을 수 있었다. 김민기는 수십만의 군중이 그가 지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군중의 노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모든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대중의 품으로 가서야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예술이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 기타 하나 들고 노래로 밤을 깨우고 사람들을 이어준 노래꾼. 같이 울고 다독이고 일어서 아침을 보는 우리 곁에 노래로 함께 한 뒷것이라 말하지만, 선구자였던 사람.
그의 귀향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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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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