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새난슬’, 특이한 이름. 네 글자 이름 앞 두 글자가 성(姓)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다 가져온다고 생각했는데, 이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새’라는 성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눈에 띄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어떨까. 그래서 들어봤다. 그런데 노래도 이름만큼이나 눈길이 간다.
앞 사람에게 말하듯 적은 가사는 특별하지 않지만 가사 내용이 내겐 익숙하지 않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그래서 찾아봤다.
“아, 역시.”
정태춘, 박은옥 씨 딸이라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 아빠와 같이 노래를 불렀다. 오늘 내가 들은 노래도 지금 막 만든 노래가 아니다. 이제 막 데뷔한 가수도 아니다. 내가 몰랐던 것뿐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가수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제야 알게 되고 이제야 그 노래를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클랩함 정션’ 이건 또 뭐지? 아, 지명이었구나. 영국 어딘가에 있는. 그럼, 이 노래는 그곳 여행(또는 살던) 중 느낀 무엇을 적은 거겠군. ‘마음이 무얼까?’ 노래에서는 반복해서 묻는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라는 표현을 우리는 곧잘 쓴다. 그런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스무 살 언저리 시절로 생각은 옮아갔다. 정새난슬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그랬다. 나도 그때는 내 마음을 몰랐다. 내 마음인데 내가 알 수 없는 것에 답답해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정해진 시간표대로 사는 나이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생각에 빠져 밤을 새우기도 하고, 어느 날은 친구와 술에 취해 개똥철학을 읊었다. 나이가 더 들면 모든 게 확실해지고 분명해질 줄 알았다. 젊음의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이가 드니 알 수 없는 것, 불안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줄었다. 더 나이가 드니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럼 나는 어른이 되어 세상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일까? 아니다. 아니다.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천지인 것은 다르지 않다. 마음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이제 난 질문하지 않는다. 마음이 무엇인지, 불안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제는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는다. 모르겠다고 말하지 않는, 불안하지 않은 나를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클랩함 정션에 가면 ‘마음이 무얼까’ 하고 묻게 될까?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던 내가 그립다. 불안한 청춘이 그립다.
정새난슬은 말한다.
‘진짜 마음이 무얼까?’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스물셋, 스물여섯.
마음이 뭔지 모르는 여자 둘이
낯선 런던에서 이방인 행세하던 시절.
그 시절은 진작에 끝났는데,
나는 아직 궁금해요.
마음이 무얼까.
마음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는 그. 아직 모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직 궁금하다고 말하는 그는 아직 청춘이다. 나도 다시 청춘이 되고싶다.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
봉제 인형 가득한 너의 방
아스다로 향하는 사람들
마늘 향 넘치던 너의 부엌
넌 내게 묻곤 했지
마음이 무얼까, 마음이 무얼까
난 네게 대답했지,
마음이 무얼까 모르겠어, 모르겠어
마음이 무얼까?
마음이 무얼까? 모르겠어
배터씨 파크로 가는 길
싸구려 와인과 스케치북
축구를 하는 일본 소년들과
풀물이 잔뜩 든 너의 바지
넌 내게 묻곤 했지
마음이 무얼까, 마음이 무얼까
난 네게 대답했지,
마음이 무얼까 모르겠어, 모르겠어
마음이 무얼까?
마음이 무얼까? 모르겠어, 모르겠어
*** 새난슬은 ‘새로 태어난 슬기로운 아이’란 뜻으로 작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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