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성산 4.3 희생자를 기억하며···.

제주 올레길을 걷던 날이다. 여름휴가로 며칠간 떠나온 참이다. 장마가 끝나고 한창 7월 말이었다. 한낮에는 푹푹 찌는 공기와 뜨거운 햇살에 걷는 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더위를 피해 날이 밝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부터 걷기 시작했다. 며칠 걷자 몸은 걷는 데 익숙해졌지만,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살갗 여기저기 빨갛게 익어 스치기만 해도 쓰라렸다. 하루만 더 걷고 돌아가야지 하는데 발길은 성산 일출봉 앞에 닿았다. 일출봉을 빠른 걸음으로 올랐다 내려와 올레길로 이어지는 길은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아침 시간임에도 견디기 힘들게 쓰리고, 따가웠다.

광치기해변에 이르자 돌담에 모래사장 한편에 쓰라린 시구가 돌에 새겨져 있다. ‘아,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구나’ 알 수 있었다. 흔적이 이어진다. 제주 4.3 성산읍지역 양민 집단학살의 표지석, 제주 4.3 희생자 성산읍 유족회에서 새겨 놓은 추모 시,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 위령비, 강준훈의 시 ‘섬의 우수’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제주기행문’을 새긴 돌판. 제주에서 걷다 보면 억울한 죽임을 당한 시간의 흔적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어디 제주뿐인가. 우리 땅 어느 곳도 그렇지 않은 곳이 없다.

70여 년 전 그날 아침도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희고 파랬을 거고 일출봉은 일렁이는 파도 너머 성채처럼 버티고 있었을 거다. 바닷물에 맞닿은 하얀 모래사장 위 풀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문주란은 분수처럼 피어 있었을 것이다. 굴비처럼 엮여 끌려온 사람들은 알았을까. 매일 보던 이 풍경 속에서 자신들이 죽어가리라는 것을. 모래 위에 뿌려진 피는 이전 풍경에 유일하게 없던 색이다. 그날 이 아름다운 풍경에 휙 뿌려진 붉은색은 앞으로 영원히 이곳에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저 먼 나라 적도 아니고 하늘과 바다의 저주도 아니고 백성을 지켜야 할 군인과 경찰이 백성을 죽인 광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짓을 되풀이하는 게 인간의 역사라는 것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은 안식을 얻었을까. 아직도 이 바다, 하늘에서 울고 있을까.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죗값을 치르지 않았는데 망자의 영혼이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언제쯤 우리는 이 영혼을 쉬게 할 진혼가를 부를 수 있을까.


섬의 우수
강중훈

여기 가을 햇살이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 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 잔등 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우리들이 바라보네
성산포 ‘앞바를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아직도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 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 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위령제령재단 위로
뉘 집 혼백인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이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기 위해 이 바위에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편이 그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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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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