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가는 덕유산

덕유산을 떠올리면 늘 커다란 자연의 품이 연상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산은 넓고 크고 깊고 높다. 지리산보다 가까우면서도 자주 찾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거리는 지리산보다 가까우나 산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도 편하지 않고, 차를 가져간다고 해도 원점 회귀가 아니라면 돌아오기는 어렵긴 마찬가지다.

다른 국립공원 큰 산을 갈 때보다 더 준비하고 챙겨야 한다. 푸근한 이미지 때문에 설렁설렁 갔다가는 곤욕을 치르기 쉽다. 특히 겨울엔 강원도 산골보다 더 큰 눈을 만나고 소백산 겨울바람 같은 칼바람도 각오해야 한다. 겨울보다는 여름이 나을까? 여름에는 눈에 파묻히거나 추위와 바람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은 없다. 넉넉한 물과 적절한 체력 안배만 한다면 짙푸른 녹음과 무주구천동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와 향적봉~중봉을 넘어가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즐길 수 있다. 봄, 가을에는 육십령에서 구천동이나 영각사에서 구천동까지 원 없이 걷는 종주를 할 수도 있다. 다 귀찮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설천봉까지 직행해서 풍경을 만끽하고 바로 내려올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구천동 버스터미널에서 야영장을 지나 구천동계곡을 따라 올라 백련사, 향적봉, 중봉을 거쳐 오수자굴, 백련사, 구천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구천동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 최고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냇물은 양도 많아서 굽이치는 소리도 시원하고 보는 눈도 즐겁다. 월하탄, 인월담, 안심대, 구천폭포, 백련담 등 구천동 33경을 얽힌 이야기와 함께 구경하는 것도 재미다.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에 오르는 길은 여름에는 땀께나 쏟아야 하는 힘든 과정이지만 향적봉에서 보는 사방 경치와 중봉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의 호젓함은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물론 안개가 끼지 않는다면 말이다).

중봉에서 가파른 경사를 조심해서 내려오면 오수자굴에 이르는데, 굴 속에서 땀을 식히고 가자. 여기까지 오면 거의 다 내려온 거라고 보면 된다. 완만한 길을 따라 백련사에 이르러 절 구경을 하고 다시 시원한 구천동 계곡 길을 걸으면 금세 출발한 곳에 닿게 된다.

구천동 계곡을 걷다 봉우리엔 오르지 않아도 된다. 계곡 너른 바위 위에 앉아 물소리를 음악 삼아 나무와 풀, 꽃을 구경하고 한나절 놀다 오는 것도 좋지 않은가? 지금쯤 지천으로 피었을 노란 원추리꽃과 인사하고 얘기하는 것도 좋다.

갑자기 덕유산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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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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