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산에 올라

몇 년 만에 사패산에 올랐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 오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날도 요즘처럼 해가 긴 여름이었다.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직원과 같이 퇴근하다 아직 해가 눈부시게 밝은 것을 보고 ‘산에나 갔다 갈까?’ 하는 말로 송추계곡 입구로 향했다. 북한산국립공원 송추계곡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두에 양복바지, 흰 셔츠 차림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기억은 늘 왜곡되기 마련이어서 이전에는 한 시간 만에 후딱 올라간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길고 가파르다. 셔츠가 흠뻑 젖어 꼴사나운 모습에 서로 웃으며 정상에 섰다. 해가 곧 붉고 누런빛으로 변하리라. 그날따라 유독 하늘빛이 선명하여 석양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려오는 길 어둠이 두려워 서둘러 아래로 내려섰다. 반쯤 내려왔을 때 기어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조명으로 발아래를 비추며 내려오니 다시 셔츠가 땀에 푹 젖었다.

그렇게 갔던 게 이전 마지막 사패산 기억이었다. 이번에 오르는 길은 전보다도 잘 정비가 되어 샛길로 잘못 빠질 염려 없이(전엔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섰던 적 있다) 수월하게 정상에 올랐다.

사패산은 도봉산, 북한산과 더불어 서울 시내에서 가까워 여름이면 저녁에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머리에 등을 달고 산에 오른다. 꼭대기 너른 마당 같은 바위 위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도 있고 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세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이야 라면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수십 명이 눕고도 남을 넓은 바위 위에 머리칼을 쓸고 가는 바람을 느끼고 산 높이만큼 가까워진 하늘에서 별자리를 찾고 싶다. 그러다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사람이 사는 아래로 내려오면 된다.

처음 사패산에 오를 때는 송추계곡을 따라 음식점과 음식점에서 내어놓은 평상이 끝 모르게 줄지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나무와 풀, 꽃이 대신하고 있다. 덜꿩나무, 황매화, 죽단화, 쉬땅나무, 낭아초, 원추리가 줄지어 손을 마주치자고 한다.

오랫동안 남쪽 산에 눈이 팔려 찾지 않았던 사패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장 편한 친구로 찾던 산이 아닌가. 앞으로 자주 찾아 나무도 꽃도 풀도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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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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