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연 목사를 추모하며

나는 중, 고등학교를 고향 집과 외가 이모, 외삼촌 집을 오가며 다녔다.

중학교 2학년 때던가, 어느 날 마을에서는 떨어진 외딴집이던 고향 집에서 가장 가까운 또 다른 외딴집인 교회 사택에 새로 목사님과 가족이 이사를 왔다. 아버지가 얘기를 해주셨다.

학교 가는 버스를 타려면 교회 앞을 지나야 했는데 어느 날 아침 처음 보는 어른이 교회 앞 마당에 계셨다. 꾸벅 인사를 하자 웃는 얼굴로 손을 들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 후로도 학교 가는 길 자주 목사님을 뵈었고 늘 그렇듯 나는 말없이 꾸벅 인사를 했다. 가끔은 어디 사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물어보셨다. 또 다른 것도 물어보신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아침에 자주 달리기를 했다. 학교 가기 전 4~5km 정도 버스가 다니던 길을 따라 달린 후 학교에 갔다. 딱히 잘하는 운동이 없었지만 달리기만은 마음이 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혼자 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게 이때다. 이후에도 난 죄다 혼자 하는 것들만 좋아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교회 앞을 지나던 날 목사님이 뜰의 나무를 손질하다 나를 보시고 웃으셨다.

“마라톤을 하니?”
“아니요. 그냥 달리는 거예요.”

이날은 몇 가지 더 물어보셨다. 얘기를 듣다 보니 목사님은 우리 가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알고 계셨다. 아마 가장 가까운 집이어서일까. 딸만 넷을 둔 목사님은 아들이 셋인 우리 집과 다르다고 하셨다. 이른 아침에 달리기하는 사내아이라니, 좀 별나 보였을까. 공부는 잘하는지,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동네 애들이 교회에 많이 나오는데 내 얼굴은 못 봤다고 하셨다. 가톨릭이라고 하니 다 같은 하느님이니 신앙생활 잘하라고 웃으신다.

고향에서 학교에 다니다 다시 시내에 있는 큰외삼촌댁으로 갔다. 거기서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는 고향 집에 다녀갔다. 막내까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때 가족 모두 시내로 이사를 하면서 그렇게 고향을 떠나게 됐다. 고향에는 동생들이 모두 대학에 들어간 후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후 고향 집에 돌아왔을 때 교회에는 예전 목사님 가족은 떠나고 낯선 목사님이 살고 계셨다. 이곳에 오실 때처럼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셨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잊게 되었다.

며칠 전 친구와 얘기하다 예전 교회와 목사님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목사님이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가족들은 그곳을 떠나게 되었단다. 돌아가시다니. 난 지금도 어디선가 고즈넉한 시골 교회에서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실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대학 2학년이 막 된 봄이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 3년,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난 지 2년이 된 때다.

아침 달리기하다, 학교 오가다 몇 차례뿐이었지만, 내가 아는 여느 어른들과는 달리 날 대해주신 목사님과 만난 시간은 기억에 남아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지만, 하늘에서 평화를 얻으셨을 거라 믿는다.

Richard O’Neill · Württembergisches Kammerorchester Heilbronn · Ruben Gazarian · Christopher Park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목사님이 돌아가신 때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 교회 기록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목사님이 소속된 한국기독교장로회 회의록에서 그분의 흔적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87년 3월 9일 돌아가신 것을 확인했다. 부임하실 때부터 떠나실 때까지 흔적을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어 위안이 되었다.

1987년 3월 10일~13일, 제67회 제1차 정기노회 회의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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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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