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추억

꼬맹이 때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올랐던 기억 말고 몸이 커진 후 어떻게 산에 오르게 되었는지, 등산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 학력고사가 끝난 후 졸업까지 학교생활은 한없이 여유롭고 3년 내내 사납기만 했던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순한 양이 되고 심지어 인자하기까지 했다. 그런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옆 반이던 친구와 속리산에 가게 됐다. 누가 먼저 가자고 한 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왜 하필 속리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장 가까운 이름 있는 큰 산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그리한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입던 점퍼와 청바지, 운동화에, 산에 간다고 그마다 더 챙긴 게 목도리와 장갑 정도였던 것 같다(나중에 사진을 보니 그렇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지나 눈이 꽤 쌓인 산길을 올랐다.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길이다. 왜 그 코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길이 속리산에 오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문장대가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생각했을 거다(천왕봉이 더 높은 봉우리라는 것은 10여 년 뒤에 알았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길에 운동화는 속절없이 미끄러지고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땀도 흘린 기억 없이 쉽게 문장대에 올랐다. 그때 카메라를 가져갈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인증사진도 찍었다. 앨범을 보니 겨우 두 장의 사진이 있을 뿐이다. 입시 공부에 감성 따위는 잔뜩 메마른 시절이라도 눈 쌓인 산이 꽤 멋졌을 텐데 풍경 사진은 한 장도 없다. 필름이 아까웠나? 사진 찍을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던 것인가? 아무튼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한 장, 혼자 찍힌 사진 한 장, 딱 두 장의 사진이 그날을 증명해 준다. 내려오는 길에는 수십 번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가 얼얼한 기억이 아직 있다.

또 다르게는 대학 친구, 선후배들과 가끔 산에 오른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 논다는 건 대개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다. 대학 시절 기억은 봄날의 화창한 캠퍼스 풍경과 무채색으로 무겁고 칙칙한 터널의 지나는 느낌이 겹친다. 낭만은 사치처럼 여겨지던 시절 햇살과 광장의 푸르름만이 아름다웠다. 시장 골목에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노래 부르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놀이가 없던 때 ‘산에나 갈까’라는 말에 삼삼오오 북한산, 도봉산에 오르곤 했다. 역시 물 빠진 청바지나 교련복에 운동화 차림이다. MT나 행사를 산에서 했던 적도 몇 번 있다.

12월 마지막 날 밤엔 새해 해돋이를 보러 수십 명 선후배가 줄지어 산에 올랐다. 책가방에 부루스타, 냄비, 라면과 이불을 말아 넣어 둘러멘 채. 정상 부근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불을 피워 추위를 녹이면서 해뜨기를 기다렸다(그땐 국립공원에서 불피우고 라면 끓여 먹는 게 가능했다). 돌아가며 때론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추위를 참았다. 붉은 해가 봉우리 사이로 마치 닭이 알을 낳듯 떠오르면 함성을 지르고 응원가를 부르고는 다시 신나게 산길을 뛰어 내려와 해장국집으로 향해 소주와 뜨끈한 국물로 얼었던 몸을 녹였다. 그렇게 새해 첫날을 맞았다.

가끔은 혼자 산길을 걷기도 했다. 유쾌하고 즐거웠던 것 같지는 않다. 칙칙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걸 보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산을 찾았던 것일까. 그러나 산에 오르는 것을 취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이때 난 딱히 취미가 없었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미친 정도는 아니었고, 음악감상실에서 고전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해 들르는 정도였고, 책 읽는 것도 좋아했으나 학생이 독서를 취미라 하는 것은 바보 인증이니 난 취미가 없었다.

취직을 한 후 6일 일한 후 돌아오는 휴일 하루가 소중한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이 하루를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충실하게 후회 없이 쓸 것인가? 한 주에 하루 있는 휴일을 잘 쓰는 데 집착하면서 취미가 생겼다. 영화 보기, 등산. 그때부터 여러 산을 찾고 시외버스, 기차를 타고 먼 곳에 있는 산도 찾아갔다. 당연히 등산화, 배낭, 등산복 같은 것도 갖추게 되어 누가 보더라도 산에 가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왜 산이었을까? 다른 취미를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친구(남자) 중엔 꽃꽂이가 취미인 애도 있었다. 20세기에. 전에도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지만 모르겠다. 왜 등산이 취미가 되었는지. 프로젝트와 해외 발령으로 십수 년 취미는 엄두도 못 내는 생활을 떠돌다 다시 정착해서 취미란 것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산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산에 엄청난 애착이 있어서도 아니고 체력이 좋아 높은 산을 뛰어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산에 가면 마음도 몸도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산에 오른다고 고민이 해결되거나 새로운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산에 오르고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나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는 유체 이탈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시간만큼은 내게 휴식이고 직책이나 자격, 위치로서가 아닌 나로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산으로 발길이 향했던 것이 아닐까.

가끔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기도 하고 더 빨리, 더 멀리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상생활이 산에서도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산에서 그렇게 지내고 나면 일상과 휴식에서 쉼 없이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문득 지쳐 쉬고 싶어진다. 산에서조차 정신과 몸이 자본주의 성과 논리에 지배받는 끔찍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딱히 특별한 이유 없이 산에 올랐던 것은 코흘리개 시절 산에서 뛰어놀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냥 갔던 거다. 거기가 놀이터고, 딱히 달리 갈 데도 없고, 가면 좋기 때문에. 특별하고 큰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니다. 취미라고 이름 붙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교 갈 때 입던 옷과 신발에, 학교에서 보았던 친구들과 산에 놀러 간 거다.

지금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은 등산인가? 취미인가? 운동인가? 치유인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산에 오르는 것은 내게 취미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게 되었다. 매주 올라야 할 이유도 없고, 꼭대기까지 가야 할 목적도 없고, 빨리 더 멀리 가야 할 목표도 없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만큼만 가면 된다. 풀이며 나무, 바위와 흙, 새와 벌레와 내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오면 된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산에 오르는 것에 목적, 목표, 이유가 없어진 것이. 정확히 때를 가리킬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무와 풀, 꽃, 새와 벌레, 바위를 자세히 보게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바위에 붙어 만지작거리고 쓰다듬고 누워 있다 보니 내 집과 방, 책상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나무와 풀 사이에서 쉬고 잠자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가족, 친구, 이웃처럼 느껴졌다. 꽃에 얼굴을 가져다 바라보고 있으면 어여쁜 여인 얼굴을 보는 것 같고, 산길 옆 작은 들꽃을 엎드려 보고 있으면 잠자는 아이 얼굴을 보는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둠이 짙어져 산과 하늘 경계가 희미해져도 쉼과 평화가 내려옴을 알기에 두렵지 않다.

이제 등산은 내게 추억 속 취미가 되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아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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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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