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대나무 숲길, 꽃 피운 대나무

전남 구례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을 따라 대나무숲과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성암이 있는 오산 건너편이다.
죽순대(맹종죽)가 숲을 만들고 그 사이로 길을 내어 주민과 관광객이 제법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지리산둘레길 소풍 행사 때 이 길을 처음 걸은 후 구례와 지리산을 찾아올 때면 자주 들르는 곳이 되었다.
여느 숲길과 달리 대나무 숲길은 하늘 높이 쭈욱 자란 대나무가 시원하고 바람에 잎사귀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마음의 잡념을 쓸어내는 소리로 들린다.
이번 달 초 성삼재에서 천왕봉, 중산리까지 종주하기 전 이곳 섬진강 대나무 숲길을 찾았다. 아, 그런데 이상하다. 얇고 푸른 잎이 자라 있어야 할 가지마다 익어가는 수숫대같이 무언가 잔뜩 달려있다. 눈을 가까이 대고 살펴보니 잎이 아니다. 꽃이다. 한참을 걸어도 보이는 나무 모두 꽃이 피었다. 꽃이 핀 지는 이미 꽤 시간이 흘러 보인다. 꽃은 윤기를 잃고 모두 시들고 말랐다.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풀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땅에 떨구고 나면 모두 말라 죽는다. 흙에 떨어진 씨앗은 다시 싹을 틔워 새 대나무로 자란다. 대나무는 땅속뿌리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일시에 모든 줄기에서 꽃을 피우고 모두 함께 생을 마감한다.
지금껏 살면서 대나무가 꽃을 피운 것은 몇 차례 밖에 보지 못했다. 품종에 따라 10년, 20년마다 꽃을 피우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단으로 꽃을 피운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이 보았다.
꽃 피우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지리산 일대 구상나무를 시작으로 많은 침염수가 말라 죽는 현상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학계, 환경단체에서 원인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최근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과 이로 인한 급속한 기후변화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섬진강 대나무 숲길은 조성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다시 씨앗부터 싹을 틔워 숲을 만들어가야 한다.
자연은 자신의 몸으로 변화를 증명한다. 우리는 나무와 숲의 소리를 응당 듣고 그 외침을 알아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푸른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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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fellow hikers and friends!
I am S. LEE. I’m a hiker and dream of one day spending most of my time on long distance trails. I love to breathe in nature and think about how humans can live in harmony with nature as part of a community of life. Sometimes I talk about music, movies, and books with my friends.
This a my life log, nothing special, but I hope you’ll jo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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